김낙훈의 기업인탐구
10대부터 현장에서 일한 노하우
생산성 7배 높인 '펀칭장치', 빗물 막는 장독대, 타공울타리 등
다양한 신제품 아이디어 나와
1주일에 한두번은 공장서 취침
잔업 있는 날엔 직원과 족발파티…'근로자의 날'엔 감사패도 받았죠
경영포인트
(1) 40년 이상 타공분야 외길
(2) 기능인력 양성
(3) 다양한 신제품 개발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일감이 없어 휴폐업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경기 시화산업단지에 있는 성실타공도 불황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일감이 전성기보다 줄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늘 희망에 차 있다. 신제품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화산업단지 군자천변에 있는 성실타공(회장 이동훈)에 가면 타공기계가 스테인리스판을 뚫는 소리가 들린다. 산업단지에 들어섰음을 느끼게 하는 소리다.
작년 5월 초 이 회사에선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임직원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직원들이 이동훈 회장(55)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대개 ‘근로자의 날’ 기념행사에선 최고경영자가 특별한 성과를 낸 직원을 포상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날만큼은 달랐다. 직원들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이동훈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그는 여러 가지 포상을 받았지만 이 감사패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 직원들의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패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귀하께선 회사 발전에 노고를 아끼지 않고 기술혁신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셨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성실타공은 펀칭기로 타공판을 생산하는 업체다. 타공은 스테인리스, 철판 알루미늄 등에 고른 간격으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말한다. 이를 통해 각종 타공판을 제조한다. 여기엔 방음용 타공판은 물론 인테리어용 타공판, 집진기용 타공판과 분쇄기스크린 등이 들어 있다.
그가 감사패를 받은 것은 ‘미끄럼방지 돌기성형용 광폭자동펀칭장치(automatic punching apparatus)’를 개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기계는 수동 타공기와 달리 자동으로 체크무늬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성형 처리할 수 있는 설비다. 게다가 최대폭 1500㎜까지의 타공판을 다룰 수 있다. 이 설비는 힘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힘차게 펀칭하면 구멍이 생기고 너무 약하게 하면 돌기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판 전체에 고른 힘을 가해야 하며 똑같은 모양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돌기판은 주로 미끄럼 방지용으로 쓰인다. 이동훈 회장은 “식품업체를 비롯한 공장 바닥재나 선착장데크 등 미끄럼 방지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제품을 개발해 발명특허를 따냈다. 이 회장은 “이를 사용하면 기존 수동형 장치를 쓸 때보다 생산성이 7배가량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를 개발하기 위해 3년간 약 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숨쉬는 장독대 뚜껑’도 그중 하나다. 장을 담근 뒤 뚜껑을 열어놓고 농삿일을 하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장을 버릴 수 있다. 그는 유리로 뚜껑을 만들고 그 옆을 미세한 구멍의 타공판으로 감싼 제품을 개발했다. 뚜껑을 덮어도 햇빛이 투과되고 통풍이 돼 장을 숙성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테인리스 타공울타리’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고 기존 설비를 개량해 생산성이 향상된 기계도 속속 선보였다.
타공판은 공항이나 체육관 고속철도역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천장에 설치된다. 그 안의 흡음재와 더불어 소음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천장 높은 곳에 있어 일반인은 타공판을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곳곳의 다중시설엔 어김없이 타공판이 설치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소음으로 시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된다. 식음료공장에선 찌꺼기를 걸러내는 용도로 쓰인다.
타공기계는 단번에 스테인리스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삐쭉삐쭉 금속쪼가리가 붙어 있어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타공판의 열처리가 잘 돼 있어야 한다. 이런 원리를 터득해 다양한 타공 부대설비도 개발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성실타공은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노비즈)과 부품·소재전문기업으로 인증받았고 특허기술대전 동상 등을 받았다. 이 회사의 타공판이 설치된 곳은 대전월드컵경기장, KTX 광명역사 및 천안역사, 울산체육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 것은 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그는 10대 중반부터 현장에서 일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대 초반인 1982년 서울 대방동에서 창업해 펀칭기를 돌렸다. 영등포 일대의 주류업체 식료품업체 등을 주된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대방전철역 바로 옆 작은 공장이 그의 보금자리였다.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명을 ‘성실타공’으로 지었고 아들 이름도 ‘성실’이라고 지었다. 그가 의미하는 성실은 ‘고객이 원하는 기일 내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납품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요일 저녁 고객이 발주해 월요일 일과 시작 전까지 납품을 요청해도 어김없이 납품했다. 이 회장은 본인이 최고경영자지만 실제 기계를 돌리는 기능공이다. 요즘도 일감이 밀릴 때는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직접 펀칭기를 돌린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이런 제품을 개발하면 고객이 더욱 편리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신제품을 개발했다. ‘숨쉬는 장독대 뚜껑’은 고향 시골 농부들의 시름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발명했다. ‘스테인리스 타공울타리’는 전원주택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나무 울타리가 약해 자주 교체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 제품은 튼튼하고 미려한 게 특징이다.
이 회장은 “고객이 불편한 점을 생각하면 다양한 신제품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1주일에 한두 번은 공장에서 잔다. 잔업이 있는 날엔 직원들과 밤늦도록 함께 공장에 남아 족발파티를 열어준다. 이 회사 임직원은 모두 30여명. 이들은 대부분 20~30년 함께 동고동락해왔다. 이 중 장철웅 사장은 30년 이상 근속했고, 공장장 생산부장 등 간부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근속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임원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니라 모두 한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업 전 자신이 몸담았던 중소기업 사장이 나중에 생활고를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모셔다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고품질 타공제품 생산에 온 힘을 쏟고있다. 기본 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량해 고성능 자동화장비를 직접 제작한것도 이를 위해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 경험이라고 여긴다. 이 회장은 “품질은 기술자의 손끝에서 결정된다”며 “기계에만 의존해선 혼이 담긴 제품을 제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모노즈쿠리’인 셈이다. 이를 위해 현장경험이 풍부한 기능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